[이용재 남수연화경로당 회장 인터뷰] 남수연화경로당의 든든한 버팀목, 이용재 회장의 아름다운 여정"남수연화경로당, 그 속에 노년의 품격과 행복이 익어갑니다“
수원시 남수동의 나지막한 골목길, 은은한 연꽃 향기처럼 주변을 따뜻하게 물들이는 공간이 있습니다. 지난 2015년 11월, 수원사 주지 세영 스님의 자비로운 혜안과 온 동네 주민들의 정성이 모여 문을 연 '남수연화경로당'입니다.
이 아름다운 사랑방의 중심에는 올해로 83세(갑신생)를 맞이한 이용재 회장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서류 작성법조차 몰라 컴퓨터를 새로 배워가며 맨땅에 헤딩하듯 시작한 일이었지만, 특유의 '맡은 일은 끝까지 해내는 책임감'으로 어느덧 강산이 변하는 세월 동안 경로당을 지켜왔습니다.
일주일에 다섯 번, 혼자 계신 어르신들을 위해 기꺼이 따뜻한 밥상을 차려내고, "내가 부족했다"라며 갈등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이용재 회장. 마을 만들기 사업을 통해 어르신들에게 '글자'라는 세상의 가장 큰 선물을 안겨주기도 했던 그의 진솔하고도 가슴 뭉클한 삶의 이야기를 지금 전합니다.
Q. 회장님께서 경로당을 맡게 되신 계기와 과정이 궁금합니다. A. 수원사에 새로운 주지스님이 부임하시면서 절 주변이 눈에 띄게 달라졌습니다. 스님께서는 절 안팎을 깨끗하게 정리하시고, 지나가는 주민들에게도 늘 밝은 미소로 인사를 건네셨습니다. 수원사 담장 안에는 큰 느티나무 한 그루가 있습니다. 그 나무 그늘이 담장 밖까지 드리워져 여름이면 어르신들이 평상에 모여 담소를 나누는 쉼터가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부처님께 올렸던 공양을 어르신들과 함께 나누며 따뜻하게 보살펴 주셨습니다. 그러다 겨울이 다가오면서 '어르신들이 추운 날에는 어디에서 모여 쉬실 수 있을까' 고민하시던 중, 절 옆집이 매물로 나온 것을 보고 절에서 그 집을 매입하셨습니다. 이후 구청에 의견을 제출하여 남수동 경로당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주변 마을 주민들이 모여 회장과 부회장, 총무를 선출했지만 처음이라 운영 방법을 잘 몰랐습니다. 건너동네 경로당 회장님의 도움을 받으며 형식을 갖춰 운영해 보기도 하고, 틀리면 다시 고치기를 반복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컴퓨터도 처음 배워 한 달 만에 서류를 직접 작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원사 주지스님의 법명은 세영 스님입니다. 여주에 계실 때도 유치원과 경로당을 설립하고 봉사활동을 많이 하셨던 분입니다. 좋은 인연으로 함께하게 되었고, 불교의 꽃인 연꽃과 남수동의 이름을 따 '남수연화경로당'이라는 이름이 탄생했습니다. 남수연화경로당은 2015년 11월 13일 문을 열었습니다.
Q.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 오신 삶의 가치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A. 제가 늘 마음에 새기고 사는 삶의 원칙은 단순합니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 분쟁이 생기면 내가 먼저 양보하자. 진솔하게 살자. 어르신들을 공경하자. 누구에게나 먼저 인사하며 살자. 이 다섯 가지를 지키며 살아오려고 노력했습니다.
Q. 80세가 넘으신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시는 비결과 평소 하루 일과를 함께 소개해 주세요. A. 하하, 제 나이는 갑신생으로 올해 83세입니다. 옛날 일제강점기에는 열병이 크게 유행했습니다. 제가 돌이 조금 지났을 때 죽을 만큼 크게 아팠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중에 동생 출생신고를 하실 때 제 출생신고도 함께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맡은 일은 반드시 끝까지 해내는 성격입니다. 묵묵히 제 할 일을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습니다.
Q. 힘들 때 스스로를 다잡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A. 저도 힘들고 화가 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내가 이렇게 노력하는데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도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를 찾아와 함께 봉사하고 싶다고 하는 활동가들을 보면 '내가 저 젊은 사람들보다 더 마음이 좁았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힘들 때마다 '이제 그만둬야 하나' 고민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프로그램을 더 다양하게 만들어 더 좋은 경로당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다시 힘을 냈습니다. 그래서 수원시에서 운영하는 마을 만들기 사업에도 도전하며 경로당을 이끌어 왔습니다. 아내는 "경로당은 점심만 잘 드시면 되지,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고민도 많았지만, 늘 응원해 주는 가족과 주변 분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Q. 남수연화경로당의 가장 큰 특징이나 자랑거리는 무엇인가요? A. 마을 재정비 사업 설명회를 들으며 우리 마을에 필요한 것들을 시에 적극적으로 건의했습니다. 집수리 과정에서도 많은 것을 배우며 지역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수원사에서 시작된 따뜻한 마음이 남수동에도 이어져 지금의 남수연화경로당이 만들어졌고, 지금도 경로당 기록장, 공유냉장고, 텃밭 운영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Q. 일주일에 다섯 번 함께 식사하는 문화는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A. 혼자 지내시는 어르신들이 많았습니다. 혼자 식사하시는 것보다 함께 밥을 먹으며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Q. 어르신들이 함께 식사하며 가장 좋아하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A. 특별한 음식을 함께 만들 때 가장 즐거워하십니다. 만두를 빚거나 송편을 만들고, 메주를 쑤어 청국장을 만들거나 김장을 할 때면 "나는 힘들어서 못 해." 하시던 분들도 막상 시작하면 누구보다 신나십니다. "이건 이렇게 해야 하고, 저건 저렇게 해야 한다."며 서로 알려주시고 웃으며 이야기하시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Q. 어르신들을 이끄시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점은 무엇인가요? A. 특별히 어려운 점은 많지 않았습니다. 연장자 순으로 서로 예우하고 공경하는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서로 희로애락을 나누며 담소를 나누다 보면 갈등도 자연스럽게 풀립니다. 무엇보다 웃음으로 승화시키려고 노력합니다.
Q. 경로당 운영 중 어려움이나 어르신 간 갈등이 있을 때는 어떻게 해결하시나요? A. 제가 먼저 잘못했다고 합니다. "제가 부족했습니다. 저를 봐서라도 화를 푸시고 맛있게 점심 드십시다."라고 말씀드리면 금세 서로 웃으시며 풀어집니다.
Q. 회장님께서 생각하시는 좋은 경로당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A. 어르신들이 오시면 누구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앉아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고민이 있으면 서로 의논하고, 경험 많은 연장자분들이 함께 지혜를 모아 해결책을 찾는 곳이 좋은 경로당이라고 생각합니다.
Q.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이나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A. 93세 어르신 한 분이 "내 이름이라도 쓸 수 있게 한글을 가르쳐 달라."고 말씀하셨을 때 가슴이 뭉클해져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2019년 마을 만들기 사업에 처음 도전해 제안서를 제출했고, 많은 활동가들 앞에서 사업 설명을 하며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다행히 사업이 선정되어 한글교실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현수막에는 "낫 놓고 기역자 배우러 갈까?"라는 문구를 넣었습니다. 수업은 일주일에 두 번 진행했고, 동 행정복지센터에서 한문을 가르치시던 선생님을 모셔 함께했습니다. 몇 달 뒤 한 할머니께서 "병원에 가서 내 이름을 직접 썼다."고 말씀하시자 어르신들이 모두 박수를 치며 기뻐했습니다. 그분들이 오래오래 함께하실 줄 알았는데 코로나 이후 차례로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지금도 열심히 공부하시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Q. 앞으로 남수연화경로당이 어떤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나요? A. 요즘은 회원 수가 점점 줄어 고민이 많습니다. 70대 분들이 많이 오시면 좋겠지만, 아직 일하시는 분도 많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분들은 복지관이나 개인 취미생활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로당은 품격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젊은 세대가 함께 참여해 활력을 불어넣어 주면 좋겠습니다. 한편으로는 앞으로는 경로당이라는 이름보다 마을회관처럼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하는 공간이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Q. 개인적으로 이루고 싶은 소망이나 계획이 있으신가요? A. 오랫동안 봉사활동을 하다 보니 제 개인 시간을 거의 갖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조금씩 내려놓고 제 시간도 가지면서 취미생활도 해보고 싶습니다.
Q. 지역사회나 행정, 지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경로당마다 실제 식사를 얼마나 자주 하는지, 몇 분이 이용하는지를 기준으로 운영비를 차등 지원하면 좋겠습니다. 행정복지센터 주무관님들이 직접 방문하면 충분히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매일 식사를 제공하며 많은 어르신들이 이용하는 경로당에는 그만큼 더 많은 지원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운영을 직접 해 보니 이런 제도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Q. 후배 세대나 젊은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A. 내 지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봉사하며 노후를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지역을 위해 봉사하는 것은 결국 자신에게도 큰 덕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했습니다. 젊은 분들이 우리 동네 어르신들을 가족처럼 따뜻하게 보살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Q. 어르신들의 행복한 노후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남수연화경로당 어르신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있습니다. 회원 여러분께서 저를 살게 해 주셨고, 계속 일할 수 있도록 힘을 주셨습니다. 때로는 칭찬도 해주시고, 때로는 따끔한 충고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그 덕분에 제가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회원 여러분 모두 건강하게 오래오래 함께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몸이 불편하시면 미루지 말고 병원을 찾으시고, 늘 건강하고 행복하게 생활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내가 이렇게 노력하는데 알아주는 이 없다"라며 남몰래 속앓이를 하던 날도 있었습니다. 주위에서 걱정 어린 만류에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용재 회장을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오히려 자신을 찾아와 손을 내밀어 준 젊은 활동가들이었고, "내 이름 석 자만 쓰게 해달라"던 93세 어르신의 눈물이었습니다.
"회원 여러분이 저를 살게 해 주셨고, 계속 일할 수 있도록 힘을 주셨습니다." 인터뷰 말미에 남수연화경로당 어르신들에게 공을 돌리는 그의 모습에서 진정한 동방예의지국의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합니다.
이제는 개인의 삶도 조금씩 돌보며 후배 세대들이 이 아름다운 봉사의 바통을 이어받기를 바란다는 이용재 회장. 밥 한 끼의 온정으로 시작해 마을 전체를 살기 좋은 곳으로 가꾸어 온 그의 바람대로, 남수연화경로당이 앞으로도 나이와 세대를 넘어 누구나 편하게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마을회관'이자 품격 있는 쉼터로 영원히 남기를 응원합니다. <저작권자 ⓒ 경기시니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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