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에서 1995년 처음 요양원을 개설한 후 30년이 넘도록 요양원을 운영해 왔다. 오랜 세월 현장에서 어르신들을 모시면서 노인복지에 관한 한 나름대로 전문가라고 자부할 만큼 많은 경험을 쌓았다.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후 2001년 일본을 방문해 현지 요양원 등에서 실습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20~30년가량 앞선 선진형 노인복지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나를 포함한 대학원생 세 명이 실습했던 요양원은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인데도 상당히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각 병실에는 컴퓨터 스크린이 설치돼 있었고, 요양보호사들이 어르신들의 매 끼니 식사량과 건강 상태 등을 정확하게 입력하면 그 내용이 즉시 요양원 사무실에 기록되는 시스템이었다.
모든 병실과 복도, 심지어 현관까지 어르신들이 넘어지더라도 골절 등의 부상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푹신한 바닥재가 설치돼 있었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60명의 어르신을 모시는 시설에 당시 한화로 약 60억 원을 투자해 최첨단 시설을 갖추고 운영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내가 그 요양원에 도착한 바로 그날, 공교롭게도 치매 어르신 한 분이 요양원 밖으로 나가 실종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요양원 직원들과 경찰, 소방당국 구조대원들이 주변을 샅샅이 수색했다. 꼬박 이틀 동안 수색한 끝에 요양원에서 약 2km 떨어진 저수지에서 실종된 어르신이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내가 받은 충격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아무리 좋은 시설과 최첨단 시스템을 갖추고 있더라도 결국 돌봄의 마지막에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은 경험이었다.
요양원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와 사회복지사, 그리고 여러 직원은 가족과 보호자가 맡긴 어르신들의 삶과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들이다. 특히 요양보호사 한 사람의 순간적인 방치와 무관심, 근무 태만이 한 어르신의 생명과 직결될 수도 있다.
우리 사회는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요양원과 재가복지시설에서 어르신을 돌보는 요양보호사의 역할도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요양보호사는 단순히 식사나 이동을 돕는 사람이 아니다. 몸이 불편하고 마음이 약해진 어르신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일상을 함께하며, 때로는 가족을 대신해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사람이다.
내가 운영하는 요양원에서도 간혹 어르신들을 직·간접적으로 학대하거나 돌봄에 소홀한 요양보호사들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단호하게 대처해 권고사직이나 해고 등의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뉴스를 통해 요양시설 내 학대 사건이 사회문제로 불거질 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노인학대·폭력 이력 철저히 관리…성실한 요양보호사는 보호해야
요양보호사는 자격증만 있다고 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직업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론을 잘 알고 시험 점수가 높은 것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따뜻한 가슴과 인간미라고 생각한다.
어르신을 자신의 부모처럼 공경하고, 불편한 행동이나 반복되는 말을 인내하며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지식이나 기술에 앞서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요양보호사를 채용할 때 지원자가 제출한 이력서와 자격증 외에는 과거 근무 내용을 충분히 확인하기 어렵다. 이전 시설에서 어르신을 학대한 사실이 있는지, 폭언이나 폭력을 행사한 적이 있는지, 중대한 문제로 징계받거나 퇴사한 사실이 있는지를 새로운 시설에서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만약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아무런 정보 공유 없이 다른 시설로 옮겨 다시 근무한다면 또 다른 어르신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자동차도 사고 이력이 남고, 여러 전문 직종에서도 일정한 징계나 처분 기록을 관리한다. 하물며 사람의 생명과 인권을 직접 돌보는 요양보호사의 중대한 학대나 폭력 관련 이력이 적절하게 관리·공유되지 않는다면 제도적으로 보완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노인학대 사실이 공식적으로 확인됐거나 중대한 폭력 행위 등으로 요양보호 업무를 수행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일정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취업을 제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공공기관이 관리하는 ‘요양보호사 이력 공유 시스템’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다만 여기에는 반드시 원칙이 있어야 한다. 단순한 퇴사나 시설장과의 개인적인 갈등, 확인되지 않은 주장까지 기록해 취업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 공식적인 조사와 적법한 절차를 거쳐 노인학대, 상습적인 폭언, 신체적 폭력, 중대한 직무 위반 사실 등이 확인된 경우에 한해 기록하고, 필요한 범위에서 채용기관이 이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당사자의 소명 기회와 이의제기 절차도 반드시 함께 마련해야 한다. 어르신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과 동시에 요양보호사의 정당한 권리 역시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추천서 제도의 활용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전 근무지의 시설장이나 책임자가 지원자의 근무 태도와 어르신을 대하는 자세, 책임감 등을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평가하도록 한다면 채용 과정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자격증과 경력 연수만 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어떤 자세로 근무했는지를 함께 평가할 필요가 있다.
요양보호사 교육 제도 역시 개선되어야 한다. 이론과 기술교육도 중요하지만 인성교육과 노인 인권교육, 감정 조절 교육, 학대 예방 교육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특히 치매 어르신의 행동 특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힘든 상황에서도 화를 내거나 폭력적으로 대응하지 않도록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현장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요양보호사에게 책임만 요구해서도 안 된다.
낮은 임금과 과중한 업무, 부족한 휴식, 사회적 편견과 무시는 요양보호사의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결국 돌봄의 질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요양보호사의 처우 개선 역시 반드시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다.
요양보호사가 존중받고 자긍심을 느끼며 일할 수 있는 사회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정당한 보수와 충분한 휴식, 안전한 근무환경을 보장하고 헌신적으로 어르신을 돌보는 요양보호사를 사회가 인정하고 격려해야 한다. 좋은 요양보호사가 현장을 떠나지 않고 오랫동안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어르신들도 더 안정적이고 질 높은 돌봄을 받을 수 있다.
내가 주장하는 요양보호사 제도 개선은 요양보호사를 감시하거나 통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성실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어르신을 돌보는 요양보호사는 더욱 보호하고 존중하되, 어르신을 학대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등 중대한 문제를 일으킨 사람에 대해서는 다시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관리하자는 것이다.
자격증만큼 인성을 중요하게 보고, 지식과 기술만큼 인간미와 책임감을 중요하게 평가하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우리의 부모님도, 그리고 우리 자신도 언젠가는 누군가의 돌봄을 받아야 할 수 있다.
안심하고 부모님을 맡길 수 있는 요양시설, 어르신의 생명과 인권이 철저하게 보호되는 요양시설, 그리고 요양보호사가 존중받으며 자부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제는 어르신과 성실한 요양보호사 모두를 보호하기 위해 ‘요양보호사 이력 공유 시스템’과 인성 중심의 교육·채용제도를 적극적으로 논의해야 할 때다.
=안성 효벤트요양원 박진하 원장= <저작권자 ⓒ 경기시니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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