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다가오면 나는 빨간 치마에 노란 저고리를 입고 싶었다. 어린 내 눈에는 빨간 치마가 세상에서 가장 곱고 예뻐 보였다. 하지만 엄마는 늘 남색 치마에 노란 저고리를 입혀 주셨다. 왜 하필 남색 치마인지 어린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빨간 치마를 입고 싶은 마음에 심술을 부리고 엄마에게 괜한 투정을 부리곤 했다.
나는 갓난아이 때부터 할머니 품에서 자랐다. 할머니 품에만 안기면 신기하게도 울지 않았다고 한다. 농사일에 지친 엄마는 차라리 내가 울기라도 하면 젖을 먹인다는 핑계로 잠시 앉아 쉴 수 있었을 텐데, 나는 할머니 품에서 좀처럼 울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는 잠시 허리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다시 밭으로 나가 일을 해야 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의 나는 집보다 들과 산이 좋았다. 푸른 들판을 걷고, 소를 끌고 다니며 풀을 먹이는 일이 그렇게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어른들은 “계집애가 소를 끌고 다니면 안 된다”며 말렸다.
그렇다고 얌전히 집에만 있을 내가 아니었다. 남자아이들과 어울려 자치기도 하고, 딱지치기도 하고, 땅따먹기도 하며 해가 지는 줄 모르고 뛰어놀았다.
“계집애가 계집애답지 않고 꼭 선머슴 같다.”
그런 말을 자주 들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무엇을 하든 지는 것이 싫었다. 놀이를 해도 내가 이겨야 했고, 한번 마음먹은 일은 끝을 봐야 직성이 풀렸다.
그렇게 실컷 놀다가 집에 들어오면 엄마의 꾸지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동생들은 돌보지 않고 어디를 그렇게 싸다니느냐.”
그 말이 어린 내게는 참 서러웠다. 맏이라는 이유로 왜 나만 동생들을 돌봐야 하는지, 왜 나에게만 일을 시키는지 억울했다. 그래서 엄마가 미웠다. 철없는 마음에는 ‘혹시 우리 엄마가 계모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때는 몰랐다.
나도 그저 들판을 마음껏 뛰어놀고 싶은 어린아이였지만, 엄마 역시 하루 종일 농사일을 하고 자식들을 먹이고 입히느라 쉴 틈조차 없었던 고단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세월이 한참 흐른 이제야 엄마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왜 나를 그렇게 꾸짖으셨는지, 왜 맏딸인 내게 동생들을 맡기셨는지, 그리고 왜 명절마다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남색 치마를 정성스레 입혀 주셨는지도 이제는 따져 묻고 싶지 않다.
그저 그 시절의 엄마가 그립다.
명절날이면 입기 싫다고 심술을 부렸던 남색 치마.
그 치마를 입혀 주시며 옷매무새를 만져 주셨을 엄마의 손길도 이제는 아련한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어린 날 그렇게 싫었던 남색은 세월이 흐르면서 가장 그리운 빛깔이 되었다. 이제 내게 남색 치마는 옷 한 벌이 아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이고,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엄마의 사랑이며, 보고 싶어도 마음으로밖에 만날 수 없는 엄마의 빛깔이다. <저작권자 ⓒ 경기시니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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