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칼럼] 역사 속 빛나는 조연들을 찾아서-08마음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방랑한 문제적 천재, ‘찰리 채플린’ 편
인류사에서 새로운 장을 연 천재들에 대한 한 줄 평가는 거의 유사하다. “타인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아무도 도전하지 못한 방식으로 세상을 놀래키는 사람” 혹은 “평범함을 거부하고 자신의 독특한 가치관으로 추진력 있게 밀어붙이는 담대한 사람”이라는 긍정적인 평가가 대다수다. 반면에 냉정한 비판 또한 따라오는데 “비범한 재능만큼이나 독특한 성격과 이기심을 지닌 인물”, “시대를 앞서가나 인간적인 결함과 모순을 함께 지닌 사람”과 같은 평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무언의 몸짓으로 삶과 인간을 이야기한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희극인 중 하나인 ‘찰리 채플린’의 작품을 보지 않더라도, 미디어나 많은 콘텐츠 속에서 그를 마주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웃음으로 시대의 비극을 말하고, 눈물로 인간의 존엄을 지켜낸 위대한 예술가>라고 찬사를 받는 채플린은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편에서 웃음으로 사회를 비판한 예술가로 평가받고 있다. 물론 초기 무성영화 시절 짧은 단편을 다작했기에 현대와 기준이 다르기는 하나, 배우 · 제작자 · 감독 · 각본가 · 음악가로서 다재다능했던 그는 약 90편의 영화 출연작, 약 70편의 연출 작품, 약 80편 이상의 작품을 집필한 시나리오 작가로서 타고난 천재성을 입증했다.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대중을 울고 웃긴 채플린 또한 천재들에 대한 일반적인 한 줄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논란이 많았던 사생활, 현재에도 문제 되는 정상적인 범주에서 벗어난 여성 편력,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지나친 완벽주의적 성향은 그를 영원한 가쉽거리에 등장시킨다.
격동기에 영화로 시대를 기록한 거장은 1889년 4월 16일 영국 런던의 빈민가인 월워스에서 무대 공연하는 배우인 부모에게서 태어난다. 양친의 예술적 끼를 고스란히 물려받았으나, 채플린의 어린 시절은 배고프고 불우할 뿐이었다. 부친 ‘찰스 채플린’은 인기 있는 뮤지컬 배우였으나 알콜 중독으로 요절했고, 모친 ‘한나 채플린’은 혼자 채플린의 이부 형인 ‘시드니’와 찰리를 혼자서 키워내야 했다. 어머니 한나는 상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최선을 다하나, 가난은 그녀의 약한 정신력을 가차 없이 무너뜨리고 말았다. 결국 심각한 정신병에 걸린 어머니를 어린 형제가 부양해야 했는데, 한때 양육을 놓아버린 한나로 인해 시드니와 채플린은 구빈원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소년 가장으로서 책임감이 강한 형 시드니의 도움으로 채플린은 14세란 나이로 극단에 들어가 배우로서의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하게 된다. 5살 때 어머니를 대신하여 잠시 무대에 올랐던 짧은 경험과 부친의 주선으로 아동극단에서 활동하기도 했으나, 생활고로 인해 퇴단해야 했던 그는 형과 생계를 꾸리면서 배우에 대한 꿈을 늘 품고 있었기에 최선을 다해 성실히 경력을 쌓는다.
19세 때 영국 최대 인기 극단인 카노 극단에 입단한 채플린은 두 번째 인생의 전환기를 맞는다. 미국 순회공연에서 명성을 쌓던 그에게 미국의 유명한 코미디 배우 ‘맥 세넷’이 손을 내민다. 당시 영화를 제작하던 세넷은 채플린과 전속 계약을 맺게 되어, 어린 영국 청년은 세계영화산업의 수도인 할리우드로 가는 기회를 얻는다.
영화라는 또 다른 갈림길에 들어선 그는 처음에는 그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헤맸으나,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떠돌이(The Tramp)>를 탄생시킨 이후에는 많은 영화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매료시키는 유명 배우로 등극했다. 채플린을 생각하면 바로 떠오르는 <떠돌이>는 미국 자본주의의 햇빛에서 소외된 가난한 이들을 상징하나 품위를 잃지 않는 사랑스런 캐릭터였다. 그는 배우뿐 아니라 제작자, 감독으로서도 활동하여 할리우드 진출 3년 만에 현재 가치 305억 이상의 몸값을 받는 <가장 부유한 떠돌이>가 된다.
서민들의 경제적 고난시기였던 대공황기는 미국 할리우드에서는 <흥청망청의 시대>로 불릴 정도로 영화산업의 호황기였고, 채플린은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칠 절호의 시기였다. 1919년 동료 영화인들과 <유나이티드 아티스트>를 설립하여 영화제작자로서 기량을 펼친 그는 《키드》, 《시티라이트》,《모던타임즈》등의 명작들을 줄줄이 탄생시키며 10년 만에 영국으로 금의환향하는 영광을 맞보기도 했다. 유성영화가 시작되는 격변기에도 채플린은 무성영화의 진가를 보여주며 승승장구한 것이다.
《위대한 독재자》를 유성영화로 제작하여 정치관으로 질타받은 그는 대외적인 활동과 더불어 공산주의자로 지목된다. 거기다 자본주의를 맹렬히 비판하는《모던타임즈》상영 이후, 미 FBI의 오랜 감시와 집요함으로 인해 결국 채플린은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미국에서 추방되는 굴욕을 맛본다. 달은 차면 기운다는 말처럼 20년이 지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공로상을 받기 전까지 채플린의 미국에서의 영화 여정은 안타깝게 끝나고 만다. 스위스로 망명한 그는 이후 작품활동을 하였으나,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88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채플린은 활발한 제작 활동보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에 의미를 둔다.
젊은 나이에 이미 대스타가 된 그였지만, 말년에 안정적인 결혼 생활을 하기 전까지는 불행하고 가난한 어린 시절에 받지 못한 따뜻하고 다정한 사랑에 대한 갈증으로 방황한 듯하다. 지인에게 이야기한 평생 이천 명 이상의 여성들과의 연애 행각, 4번의 혼인 생활 중 20대였던 ‘플렛 고다드’와의 결혼을 제외한 10대 소녀들과의 3번의 결혼, 그리고 3번의 이혼은 그의 천재성만큼이나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를 만큼 흥미진진한 이야기거리였다.
마지막 결혼이 평화롭고 성공적이었던 것은 부인 ‘우나 오닐’의 부성에 대한 깊은 갈망과 결혼 당시 성인에 가까운 18세였던 점, 채플린 본인 또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오십이 넘은 나이에다 수많은 인연의 시행착오 뒤 생긴 정착하고 싶은 갈망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두 사람 사이에 남다른 호감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많은 아이를 낳고 길렀고, 그가 죽을 때까지 부부는 모든 것을 함께 했다. 우나 또한 남편을 지극히 사랑하여 채플린 사후, 그녀가 암으로 사망할 때까지 재혼하지 않았다.
21세기인 현재에도 미성년자와의 애정 행각은 범죄로 치부될 만큼 10대와의 연애는 분명 문제 있는 행동이다. 자신의 유명세와 캐스팅 권한을 이용하여 상대를 미혹한 부분과 미성숙한 10대의 부인들 또한 누군가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나이임에도 준비 안 된 아내로서 살림과 육아를 도맡게 한 것은, 당시 여전히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자행된 채플린의 이기적이고 경솔한 이면이기에 비판받아 마땅하다.
어떤 심리학자들은 채플린이 10대 소녀들을 만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어린 시절 모친에게서 받아야 할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기에 그 아픈 과거가 여성과의 관계에서 완벽한 애정을 확인받으려는 강박증으로 나타났고, 또 다른 원인으로는 첫사랑의 대상이 10대 소녀였고 그녀와 사랑을 이루지 못한 미련과 아쉬움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누구나 흠결이 있기 마련이고 각자 과거에 의한 아픈 상처는 하나쯤은 지니고 살아가는 연약한 어린아이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편에서 유쾌한 풍자극을 만들어낸 천재였지만, 채플린은 과거로부터 이어온 허기를 스스로 인정하지 못했고, 무분별한 관계들에서 본능적이고 감성적인 방법으로 채우려는 우를 범했다. 그래서 절대 해서는 안 될 위법 행위를 저지르고, 상대에게 진정성 있는 마음으로 책임을 다하기는커녕 깊은 상처를 주며 자신도 상처받았다.
가끔 어떤 이들은 천재적인 재능을 빛내기 위해 그 사람의 인간적인 문제점과 재능은 따로 봐야 한다고 한다. 그러기에 그 흠 또한 그 뛰어난 재능으로 덮어주고 가야 한다는 주장도 펼친다. 물론 그가 이룬 업적과 재능은 인정받아야 하고 그로 인한 인류 문화 발전에 대한 기여는 박수받아야 하는 게 당연하다. 하나 그렇다고 사회에 속한 조직원으로서 벌인 잘못된 행동과 한 인간으로서 타인에게 끼친 악영향에 대한 면죄부를 남발해서는 안 된다. 특히, 인간을 위한 예술 행위는 휴머니즘이 바탕이 된 고귀한 행위이기에 기본적인 인간애를 무시한 창작의 결실은 큰 설득력과 공감을 잃어버린 껍데기이다. 위선과 자만으로 가득한 작품을 보며 일시적인 감동에 가슴 떨릴 수는 있으나, 나중에 들추어진 추한 일면에 이내 마음이 닫혀버린다.
노년을 앞둔 채플린 또한 이에 대한 자기반성이 있었는지 ‘조안 배리’가 낳은 딸이 친딸이 아님에도 억울한 법정 판결에 승복하여 20년 넘게 양육비를 지급한 것은, 자신의 이기적인 행동에 대한 세상의 냉랭한 시선 때문이었다고 본다. 물론 그도 ‘우나 오닐’과의 행복한 여정을 시작하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해 못할 법의 심판에 고개 숙이며 순순히 따른 것이 진정한 자기반성의 결과인지는 모르나, 잘못된 과거에 대한 후회와 자책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관객을 웃기기 위해 백번 이상을 연습하고, 같은 장면을 삼백 번 이상을 촬영하는 이 완벽주의자는 “웃음은 강장제이고, 안정제이며, 진통제이다”, “우리 삶에서 가장 의미 없는 날들은 웃지 않은 날들이다”라고 할 만큼 고단한 이들을 위한 최고의 위로가 웃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영화들을 보고 있으면, 어린 시절 처절한 가난을 통해 불행한 삶을 경험했기에 인생의 음지에서 허덕이는 이들을 위한 따스한 위로를 할 수 있는 진심이 느껴진다. 반면에 그런 과거의 상처들을 극복하기 위해 이기적인 욕망을 내려놓고 현명하게 대처했더라면 채플린에 대한 평 또한 더 위대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도 따른다.
“난 빗속을 걷는 것을 좋아한다. 아무도 내 눈물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라는 영화사에 큰 족적을 남긴 거장의 말에서 그의 슬픈 어깨 위에 올려진 깊은 외로움을 본다. 나약한 인간으로서 벌인 실수들과 용서받지 못할 잘못들을 범하기도 한 찰리 채플린. 천재 예술가의 세상으로부터 사랑받기 위해 최선을 다한 그 처절한 몸부림에 그래도 따스한 박수를 보내고 싶은 것은 필자 또한 실수하는 나약한 인간이고 시행착오의 우를 범하는 불완전한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임 나 경 (林 娜 慶)] 소설가, 각본가, 역사칼럼니스트, 영화감독, 영화프로듀서.
<출간작> ‘곡마’, 황금소나무, 2016 (종이책) ‘대동여지도 : 고산자의 꿈’, 황금소나무, 2016 (종이책) ‘사임당 신인선 : 내실이 숨긴 이야기’, 황금소나무, 2017 (종이책) ‘댐 : 숨겨진 진실’, 황금소나무, 2017 (예스24 국내 젊은 작가들의 주목할 만한 소설 선정) (종이책) ‘진령군 : 망국의 요화’, 도서출판 밥북, 2017 (제24회부산국제영화제 2019아시아필름마켓북투필름 선정작) (종이책)
<시나리오> 방문객(The Visitor), 2017. 제8회 북한인권국제영화제 초청작 미라클(The Miracle),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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